포스팅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재야 드라이버"라는 기획을 시작한 이유부터 풀어보도록 하자...
아쉽게도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시장은 아직 충분한 규모를 갖고 있지 못하다.
국제시장 상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이며, 현대나 기아가 해외에서도 인기차종으로 각광받고 있다지만,
우리나라 레이싱에 관한 현실은 다른 나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레이싱 판의 규모가 작다보니, 뜻을 품고 열정을 던지는 드라이버와 미케닉들은 많지만
정작 이들이 활동할 무대는 한정되어 있다.
그 결과, 꾸준하게 성적을 내거나 언론 등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곧 잊혀져버리는 선수들도 많다.
또는 군대활동이나 개인적 여건으로 인해 잠깐 경기장에 나타나지 못하는 경우에도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큰것이 사실이다.
하여, 이러한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현 여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달래보고자
슈퍼레이스에서 활약했던 프로레이서들 중, 개인적인 친분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았다.
서킷의 글라디에이터, 김범훈
올해로 모터스포츠 데뷔 10년차에 오르는 늦깍이 레이서 김범훈.
32살의 나이로, 같은 프로레이서인 동년배 드라이버들이 15년에 가까운 경력을 가진데 비해
늦은 나이에 선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짧은 기간에 주목받는 드라이빙을 선보이며 경력을 쌓은 선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를 가지고 있어, 서킷 어디에서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김범훈 선수는
2009년, CJ레이싱팀의 세컨 드라이버로서 참가하여 김의수, 밤바타쿠 선수와 함께 실력을 겨룬바 있다.
비록 라이벌이었지만, 밤바타쿠 선수와는 절친한 관계이기도 한만큼 유머러스한 부분도 닮은 구석이 있다.

2002년 처음 레이싱에 몸담게 되었다는 김범훈 선수는 평소 친분을 갖고 있는 3세대 드라이버들 사이에선
나이가 많은 탓에, 맞형격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선수 경력만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막내뻘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레이스 최고 클래스인 6000클래스 드라이버로 발탁된 데에는 투지 넘치는 파이터형
경기 운영이 한 몫을 했을거라는게 본인의 평가다.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는 일 없이 극한의 한계에까지 자신과 머신을 몰아가며 추격전을 불태우는 그의
레이싱이 많은 감독들과 관계자의 관심을 받았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치열한 접전을 보여주는 자신의
스릴 넘치는 파이팅에 만족해 하지 않았을까..라고 되새겨 본다.
그러나, 2009년 6000클래스 경기에서는 오히려 이런 투지가 독이 되었다.
김의수 선수의 백업 역할을 맡은 세컨 드라이버로서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머신을 혹사시킨 대가로
한 시즌 내내 리타이어와 하위권 성적을 맴돌며 드라이버 인생 처음으로 큰 슬럼프를 맞이했다.
더불어, 2009년부터 시작한 방송활동이 레이싱에 전념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아니냐는 주변의 평가까지 들어야 했다.
김범훈 본인은 프로레이서로서 대중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자신에 대한 스폰서 확보를 목적으로
모 케이블 방송의 튜닝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인데, 이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오히려 방송으로 진출하기 위해
레이싱을 이용하다가 이제 등한시 하는것 이라는 억울한 눈총까지 받아야 했던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하소연하고픈 것도 많았겠지만, 결과만으로 이야기한다면 누명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프로레이서라는 직업만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한국 모터스포츠 시장에서 스스로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해선
단순히 경기성적만 좋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방송계로의 적극적인 활동을 도모한 것이 때를 잘못탄 셈이 되었다.
프로레이서라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성을 갖춰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듯 싶다...
팀의 입장에서 선수에게 요구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내는 스포츠맨이겠지만,
팀을 지원하는 스폰서가 요구하는 것은 누구라도 이름을 알아주는 스타 플레이어라는 김범훈 선수의 주장은
최근 유경욱 선수나 김진표 선수가 CF와 케이블방송 등으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다..

2010년과 2011년, 두 시즌동안 김범훈 선수는 한두번 경기장을 찾아 친분이 있는 드라이버들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선수로서의 활동은 잠정 중단했던 상태....
그러나 그 시간동안 오히려 자신에게 부족했던 차에 대한 공부와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근황을 전해 왔었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탓에 레이싱으로 풀지 못한 욕구는 아마추어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함으로써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운동신경이 타고났기에 야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언제고 레이스로의 복귀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며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과시해 보인다..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촌동생의 사진을 올리며 지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김범훈 선수....
트로트 가수로 활동중이라는 사촌동생 박혜신 양을 응원하는 글을 올린 것이었지만, 관심을 보였던 대부분의 이들은
사진속의 인물이 김범훈 선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빼어난 몸매를 가진 미인이란 점에만 주목했던 것 같다...
어쩌면... 김범훈 선수가 경기장에 다시 선수로 나타나는 날, 응원해주기 위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응원가도 트로트로 불러주려나? ^^;;

본격적인 프로레이서로의 행보 초입에서 큰 좌절을 맛봤던 김범훈 선수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각은 보다 많은 관중확보와 기존 레이스 팬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드라이버로서의 자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드라이빙 스쿨 등을 통해서만 조금씩 이름 석자를 알려나가는데 불과하지만,
단 한번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에게조차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켜주고, 다음에 또 찾아와서도 응원하고 싶은
선수가 되어주겠다는 그의 다짐이 이루어진다면, 멀지 않은 시일내에 레이서 김범훈의 팬클럽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완주에 안주하기 보단, 추월이라는 모험을 선택하겠다는 김범훈의 레이싱은 로마시대의 검투사, 글라디에이터와 같다.
장신의 큰 키로 검을 휘두르며 트랙을 질주해 달리는 검은 탄환, 김범훈 선수의 모습을 서킷에서 다시 보길 기대해본다.
김범훈 선수의 페이스북
아쉽게도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시장은 아직 충분한 규모를 갖고 있지 못하다.
국제시장 상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이며, 현대나 기아가 해외에서도 인기차종으로 각광받고 있다지만,
우리나라 레이싱에 관한 현실은 다른 나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레이싱 판의 규모가 작다보니, 뜻을 품고 열정을 던지는 드라이버와 미케닉들은 많지만
정작 이들이 활동할 무대는 한정되어 있다.
그 결과, 꾸준하게 성적을 내거나 언론 등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곧 잊혀져버리는 선수들도 많다.
또는 군대활동이나 개인적 여건으로 인해 잠깐 경기장에 나타나지 못하는 경우에도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큰것이 사실이다.
하여, 이러한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현 여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달래보고자
슈퍼레이스에서 활약했던 프로레이서들 중, 개인적인 친분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았다.
서킷의 글라디에이터, 김범훈
올해로 모터스포츠 데뷔 10년차에 오르는 늦깍이 레이서 김범훈.
32살의 나이로, 같은 프로레이서인 동년배 드라이버들이 15년에 가까운 경력을 가진데 비해
늦은 나이에 선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짧은 기간에 주목받는 드라이빙을 선보이며 경력을 쌓은 선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를 가지고 있어, 서킷 어디에서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김범훈 선수는
2009년, CJ레이싱팀의 세컨 드라이버로서 참가하여 김의수, 밤바타쿠 선수와 함께 실력을 겨룬바 있다.
비록 라이벌이었지만, 밤바타쿠 선수와는 절친한 관계이기도 한만큼 유머러스한 부분도 닮은 구석이 있다.

2002년 처음 레이싱에 몸담게 되었다는 김범훈 선수는 평소 친분을 갖고 있는 3세대 드라이버들 사이에선
나이가 많은 탓에, 맞형격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선수 경력만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막내뻘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레이스 최고 클래스인 6000클래스 드라이버로 발탁된 데에는 투지 넘치는 파이터형
경기 운영이 한 몫을 했을거라는게 본인의 평가다.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는 일 없이 극한의 한계에까지 자신과 머신을 몰아가며 추격전을 불태우는 그의
레이싱이 많은 감독들과 관계자의 관심을 받았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치열한 접전을 보여주는 자신의
스릴 넘치는 파이팅에 만족해 하지 않았을까..라고 되새겨 본다.
그러나, 2009년 6000클래스 경기에서는 오히려 이런 투지가 독이 되었다.
김의수 선수의 백업 역할을 맡은 세컨 드라이버로서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머신을 혹사시킨 대가로
한 시즌 내내 리타이어와 하위권 성적을 맴돌며 드라이버 인생 처음으로 큰 슬럼프를 맞이했다.
더불어, 2009년부터 시작한 방송활동이 레이싱에 전념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아니냐는 주변의 평가까지 들어야 했다.
김범훈 본인은 프로레이서로서 대중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자신에 대한 스폰서 확보를 목적으로
모 케이블 방송의 튜닝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인데, 이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오히려 방송으로 진출하기 위해
레이싱을 이용하다가 이제 등한시 하는것 이라는 억울한 눈총까지 받아야 했던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하소연하고픈 것도 많았겠지만, 결과만으로 이야기한다면 누명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프로레이서라는 직업만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한국 모터스포츠 시장에서 스스로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해선
단순히 경기성적만 좋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방송계로의 적극적인 활동을 도모한 것이 때를 잘못탄 셈이 되었다.
프로레이서라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성을 갖춰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듯 싶다...
팀의 입장에서 선수에게 요구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내는 스포츠맨이겠지만,
팀을 지원하는 스폰서가 요구하는 것은 누구라도 이름을 알아주는 스타 플레이어라는 김범훈 선수의 주장은
최근 유경욱 선수나 김진표 선수가 CF와 케이블방송 등으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다..

2010년과 2011년, 두 시즌동안 김범훈 선수는 한두번 경기장을 찾아 친분이 있는 드라이버들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선수로서의 활동은 잠정 중단했던 상태....
그러나 그 시간동안 오히려 자신에게 부족했던 차에 대한 공부와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근황을 전해 왔었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탓에 레이싱으로 풀지 못한 욕구는 아마추어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함으로써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운동신경이 타고났기에 야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언제고 레이스로의 복귀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며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과시해 보인다..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촌동생의 사진을 올리며 지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김범훈 선수....
트로트 가수로 활동중이라는 사촌동생 박혜신 양을 응원하는 글을 올린 것이었지만, 관심을 보였던 대부분의 이들은
사진속의 인물이 김범훈 선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빼어난 몸매를 가진 미인이란 점에만 주목했던 것 같다...
어쩌면... 김범훈 선수가 경기장에 다시 선수로 나타나는 날, 응원해주기 위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응원가도 트로트로 불러주려나? ^^;;

본격적인 프로레이서로의 행보 초입에서 큰 좌절을 맛봤던 김범훈 선수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각은 보다 많은 관중확보와 기존 레이스 팬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드라이버로서의 자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드라이빙 스쿨 등을 통해서만 조금씩 이름 석자를 알려나가는데 불과하지만,
단 한번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에게조차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켜주고, 다음에 또 찾아와서도 응원하고 싶은
선수가 되어주겠다는 그의 다짐이 이루어진다면, 멀지 않은 시일내에 레이서 김범훈의 팬클럽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완주에 안주하기 보단, 추월이라는 모험을 선택하겠다는 김범훈의 레이싱은 로마시대의 검투사, 글라디에이터와 같다.
장신의 큰 키로 검을 휘두르며 트랙을 질주해 달리는 검은 탄환, 김범훈 선수의 모습을 서킷에서 다시 보길 기대해본다.
김범훈 선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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